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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리교육

▒ 기초 교리내용

1. 종교가 필요한 우리 
2. 한국 천주교 소개 
3. 성서란 무엇인가? 
4.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5.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을 믿습니다
6. 우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7.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8.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9-1. 우리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믿습니다 
9-2. 선교하는 교회 
10.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 
11. 은총의 샘인 성사 
12. 신앙인은 기도하는 사람

Ⅰ. 종교가 필요한 우리

1. 타고난 종교적 심성
인간은 본래 종교적 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해하며 이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또한 인간은 진실하고 보람 있는 삶을 갈망하며 어쩌다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양심에 가책을 받고 괴로워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나약과 부족을 스스로 알고 절대적인 존재에게 의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좀더 절실하게 느낄 때 인간의 종교적 본성은 더욱 드러납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불교, 유교, 개신교, 천주교 등 여러 종교들이 저마다 독특한 교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 여러 종교들은 발생 기원과 교리, 조직 체계와 신앙 태도 등에서 비슷한 것들도 있지만 공통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란 이런 것이다.' 하고 명쾌하게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를 하나의 감정에 빠지는 것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철학적 인생관, 또는 인간의 도리를 강조하는 도덕적 가르침이거나 신비적인 예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종교를 단편적으로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 종교란?
'종교'(宗敎)라는 말을 풀어 보면 '종'은 모든 것의 중심을, '교'는 가르침을 뜻합니다. 그래서 종교는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가르침', 곧 '인생의 근본과 도리에 대한 가르침' 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럽 언어에서 통용되는 종교(Religio)의 어원은'인간이 하느님을 다시 인식한다', '인간을 하느님께 다시 묶어 맨다', 또는 '인간이 하느님을 다시 찾는다'는 의미로 설명됩니다. 그렇다면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을 다시 찾는 것' 또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확인하게 해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자신의 근본을 알아보고, 인생을 살아가는 올바른 길을 하느님 안에서 찾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3. 참 종교의 조건
인간의 근본과 그 길을 하느님 안에서 찾는 참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첫째, 종교는 이성을 초월할 수는 있어도 이성과 모순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종교 때문에 인간의 도리, 곧 인륜을 거스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종교의 근본 진리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는 필요 없고, 다만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살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만일 종교가 단지 정신 수양을 하는 것이라면 어느 종교를 믿든지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윤리 도덕과 같지 않습니다. 참된 종교는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영원한 삶을 향한 희망을 갖게 합니다.

4. 종교적 삶
종교의 좋은 점은 인정하지만 실제로 종교를 갖는 것에는 큰 부담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교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진실하고 올바르게 하도록 가르치는데, 그 가르침대로 살면 경쟁 사회에서 밀려나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불의한 사회보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생존을 위한 전쟁터라고 일컬어지는 사회 생활 속에서도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으면서 늘 기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종교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천주교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지혜를 가르치고,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면서 겸손과 사랑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또한 천주교는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웃과 사랑을 나누도록 가르칩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고 인생의 완성을 추구하면 살 수 있게 됩니다.)

Ⅱ. 한국천주교 소개

1. 천주교는 계시 종교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타고난 능력으로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시고,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오류 없이 확실하게 알려면 하느님께서 직접 알려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사랑을 직접 가르쳐 주시는 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천주교는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터득해서 세운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을 드러내시고 진리를 가르쳐 주심으로써 이루어진 계시 종교입니다. 천주교는 인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물음들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진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2. 천주교의 유래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로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던 제자들인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법통을 오늘날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서기 30년경,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기 그리스도교는 사도들의 열성적인 선교 활동으로 시리아, 그리스, 로마 등지로 신속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천주교는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통치자들에게 300여 년 가까이 혹독한 박해를 받았지만, 굳건하게 신앙을 지켜 마침내 313년 신앙의 자유를 얻었고, 곧이어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지난 이천 년 동안 서구 문화와 문명의 정신적, 사상적 토대가 되어 왔으며, 학문과 예술에도 지대한 공헌을 해 왔습니다. 또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면서 세계 평화와 인류애 증진을 위하여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약 10억 명(1998년 말 통계)의 천주교 신자들이 같은 믿음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3. 천주교의 한국 전래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지금부터 200여 년 전입니다.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따르면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프랑스 사람 그라몽(Grammont)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왔을 때부터 본격적인 신자들의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서학(西學)을 연구하던 학자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승훈은 귀국하자마자 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드디어 지금의 명동 성당 부근의 명례방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외국인 선교사가 천주교를 우리나라에 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는 세계 교회사에서 유일한 일입니다.

4. 천주교의 새로운 가르침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에 우리 나라는 국가와 사회의 이념적 근본을 유교에 두고 있었습니다. 유교 사상과 그 실천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의 바탕이었습니다. 따라서 유교에 회의를 품는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파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나 실학파 학자들은 중국을 통하여 전래된 서적과 함께 접하게 된 새로운 종교, 곧 천주교의 가르침에 빠져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행적으로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는데, 사랑과 평등과 자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이 가르침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만인은 평등하고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이며 자매라는 가르침은 양반과 천민, 남자와 여자라는 엄격한 신분 차별이 있던 사회에서 참으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5. 온갖 박해를 딛고 성장한 한국 천주교회
한국 천주교회의 성장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유교 사상에 젖어 있던 당시의 지배층은 천주교 신자들을 동양 윤리의 이단자이며, 모든 악의 전형으로 몰아 온갖 박해를 하였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 100여 년 동안 네 번에 걸친 커다란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선교사 영입과 성직자 배출을 위하여 힘쓰던 당시 조선 천주교회는, 1845년 김대건(안드레아)이 중국 상하이 금가항(金家港)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최초의 조선인 사제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는 귀국하여 일 년도 채 안 된 이듬해에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우리 민족과 함께 나누기 위하여 혹독한 박해를 견디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배교(背敎)하겠다.”라는 한 마디만 하면 단란했던 가정, 잃었던 명예와 가산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던 많은 순교자들 가운데 이미 103명은 전세계의 천주교 신자들이 함께 공경하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6. 오늘의 한국 천주교회
오늘날에도 한국 천주교회는 이런 모습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복음 선교 활동은 물론이려니와 여러 가지 사회 복지 활동, 사회 정의 수호와 인권 옹호 활동 등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드러내고, 그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천주교 신자들은 407만 명(2000년 말 통계)이라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봉사하고, 남북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북한 형제들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교회사에서 유일하게 민족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여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신앙을 고백하고 보존하는 일을 잠시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신앙 유산은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에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7. 성당은 어떤 곳인가?
천주교는 사람들이 하느님과 친밀하고 올바른 관계를 맺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합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교회'는 장소나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매우 인격적인 용어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모이려면 일정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 곳이 바로 성당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 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사도들이 계속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많이 나타내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사도 2,42-47).

8. 성당은 하느님의 집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고, 신자들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기도와 수련의 집으로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입니다. 성당에 들어갈 때 신자들은 손에 성수(聖水)를 찍어 성호경을 바치면서, 생각과 행동이 오직 하느님께 향할 수 있도록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성당의 중심은 천주교의 공적 예배인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祭臺)입니다. 제대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제대 앞에서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성당 안에 빨간 등이 켜져 있는 감실(龕室)은 신자들이 미사 때에 받아 모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몸, 곧 성체를 모셔 놓은 곳입니다.

9. 전례는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
미사를 비롯하여 천주교의 공식적인 경신례(敬神禮)를 전례(典禮)라고 합니다. 전례는 교회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예배를 뜻합니다. 전례를 통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을 공적으로 흠숭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거룩하게 됩니다. 또한 신자들은 형제적 사랑을 나누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룹니다.천주교의 대표적 전례인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바치신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이며, 그분 안에서 우리가 한 형제를 이루는 거룩한 잔치입니다. 신자들은 주일(일요일)마다, 그리고 교회가 정한 특별한 날에 미사에 참여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당에서는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시간을 정하여 여러 차례 미사를 드리는데, 신자들은 편리한 시간을 택하여 미사에 참석하게 됩니다. 미사에서 신자들은 주님께 최고의 경의를 표현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추면서 주님을 대하기 위하여 일어서고, 편안하게 주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앉는데, 이는 우리의 생활 관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10. 교구와 본당
교회 역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도(道) 단위 지방 자치 단체와도 같은 커다란 지역을 일컬어 교구(敎區)라고 부르는데, 이는 교황이 임명한 교구장 주교를 중심으로 신자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의 행정 구역을 말합니다. 교구는 좀더 작은 신자 공동체인 본당(本堂)으로 나뉘는데, 주교들의 협조자인 신부들이 상주하며 신자들을 보살핍니다. 본당에서는 신자들의 효과적인 신앙 생활을 돕기 위하여 가까운 이웃의 몇몇 가구가 모여 구성하는 작은 공동체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교구와 본당에 소속되어 신앙 생활을 합니다. 본당을 중심으로 신자들은, 앞에서 본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처럼,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형제적 사랑으로 나눔을 실천하며 세상에 나아가 선교 사명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본당은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생활 터전입니다. 본당에는 신자들의 신앙 생활 지도를 책임지고 있는 주임 신부가 상주하고 있으며, 전교 수녀와 사무실 직원들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11. 예비신자
세례를 받으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을 '예비신자'라고 부릅니다. 예비신자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존 신자들과 하나가 될 형제 자매들입니다. 예비신자들은 신자들이 누리는 영적 혜택들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천주교의 공식 경신례인 미사에는 물론, 여러 가지 기도 모임과 소공동체 모임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비신자의 장례 역시 세례 받은 신자와 똑같이 이루어집니다. 한편 예비신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기는 신앙 문제에 대하여 상담할 수 있으며, 집안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신부나 수녀에게 기도를 청할 수 있습니다.

12. 형제애로 보살펴 주는 교회 공동체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정 안에서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성장하기 위해서도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신자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거룩해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들은 본당과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모여 하느님을 같은 아버지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들면서 형제적 사랑을 나누며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형제애는 굳건한 신앙 생활과 친교의 바탕이 됩니다. 예비신자들도 이러한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교회 공동체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형제들이 모인 신앙 가족입니다. 그리고 교구와 본당은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생활 터전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신자들이 교구와 본당에서 형제애로써 친교를 맺고 일치를 이루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예비신자들이 천주교에 관심을 갖고 교리반에 참여하는 것도 이미 이 친교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니, 서로 영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격려하여야 합니다.)

Ⅲ. 성서란 무엇인가?

천주교는 '성서'(聖書), 또는 '성경'(聖經)이라고 하는 경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서는 “하느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인간은 어디에서 참된 행복을 찾아야 하는가?” 등 인간이 제기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의미심장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들려 줍니다. 우리는 천주교 신앙을 갖기 전부터 문학 작품이나 영화 등을 통하여 창조 이야기나 모세 이야기,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에 관한 이야기 등 성서의 일부 내용과 이미 친숙해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 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 이 책으로 하느님의 일꾼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2디모 3,15-17).

1. 계시의 두 원천
천주교는 성서와 성전(聖傳)을 똑같이 하느님 계시의 원천으로 삼고 있습니다. 성서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며, 성전은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위탁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성서와 성전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고 공통되는 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하느님의 똑같은 샘에서 흘러나와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만으로는 교회가 모든 계시에 대한 확실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똑같은 열성과 경외심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합니다.

2. 성서
성서는 문자 그대로 '거룩한 책', 곧 '하느님께서 당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시는 책'(계시의 책)으로서 '인간에 대한 구원과 사랑의 약속을 담은 책'입니다. 성서가 쓰여진 목적은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 20,31)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내용은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인간의 상호 관계,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와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통한 가르침 등을 담고 있습니다. 성서는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한데 모아 놓은 '전집'(全集)이라고 할 수 있으며 크게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나뉩니다. 성서는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 후 1세기까지 천 년 이상에 걸쳐 쓰여졌습니다.
성서는 비록 인간의 손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하느님께서 인간의 지성과 의지를 움직이시어 당신께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쓰게 하신 거룩한 책입니다. 성서의 저자들이 썼다 할지라도 성서의 원저자는 하느님이십니다. 성서 저자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여러 가지 문학적 형식을 이용하여 인간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3-1. 구약성서
구약성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이루셨던 인간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먼저 한 민족을 선택하셨는데, 바로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었던 이집트 탈출, 곧 민족 해방을 하느님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는데, 그것은 “나는 너희 가운데 살며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레위 26,12)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만을 믿고 따라야 할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계약을 옛 계약, 곧 구약이라고 합니다.

3-2. 구약성서의 내용
구약성서에는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법률, 종교, 관습, 문화 등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인류 가운데에서 실현하시려는 계획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먼저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은 그들과 함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면서 장차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궁극적인 인간 사랑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성서는 모두 46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용에 따라서 모세 오경, 역사서, 지혜 문학서, 예언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4-1. 신약성서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계시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과 맺으신 계약을 확대하여 모든 민족을 상대로 '새 계약'을 맺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자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 아드님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한 '새로운 계약'(신약)을 맺으셨습니다.
신약성서에는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그분께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 우리의 구세주시라는 사실을 굳게 믿게 된 제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었던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입에서 입으로 생생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격 증인들이 사라져 가고,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이 팔레스티나 땅을 벗어나 세계 각지로 퍼지게 되자 그분께 대한 신앙을 일으키고 전파하기 위하여 그분의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하여야 했습니다. 신약성서는 이렇게 해서 쓰이게 된 것입니다.

4-2. 신약성서의 내용
마태오 복음, 마르코 복음, 루가 복음, 요한 복음에는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말씀과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네 복음서는 모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곧 구세주로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분께서 곧 하느님이시다.” 하는 신앙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신약성서는 모두 27권으로 이루어졌는데, 네 복음서 외에도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적 삶과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 사도들이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보낸 신앙에 관한 편지들, 그리고 묵시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5. 거룩한 전승[聖傳]
성서에 보면, “예수께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그 하신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하자면 기록된 책은 이 세상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요한 21,25)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기록된 것 외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의 공동체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위탁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것을 '거룩한 전승'[聖傳]이라고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전과 성서를 하느님 말씀의 단일한 위탁물로 보고 똑같이 소중하게 여깁니다.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성서)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성전)에 대한 유권 해석은 교회의 공식적인 권위(교도권)에만 맡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높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과 성서와 교회의 교도권은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것이 성립될 수 없고,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한 성령의 작용 아래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약속에 대해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자로 기록된 성서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말해 줍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신비스러운 뜻과 인생의 의미, 우리 삶의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서보다 더 소중하고 빛나는 교리서는 없습니다. 성서를 읽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으며, 신앙 생활에서 얻어지는 참되고 충만한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Ⅳ.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커다란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머무르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고,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사랑이 인간 역사에 확연하게 드러난 감격스런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이름에 그치지 않고 “그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하는 신앙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가시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고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예수께서 다시 물으시자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마르 8,27-29).

1. 역사상의 예수님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지금부터 약 이천 년 전, 팔레스티나에 사셨던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신 유일하신 구세주, 곧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이시지만 죄만 빼고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은 참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유다 베들레헴의 한 외양간에서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부모를 모시고 고향 나자렛에서 당신 일생의 많은 기간을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일상적인 육체 노동을 하며 생활하셨고, 하느님의 율법에 순명하는 유다인의 종교 생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도 없으셨지만 죄를 용서받는 길을 찾는 모든 인간의 조건을 그대로 따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시고 유혹을 물리치신 다음, 갈릴래아 지방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복음 선포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구약에서 약속된 구세주(메시아)의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오셨으며, 당신께서 하느님의 인간 구원 사업을 완성하실 것임을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단순히 설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슬픔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을, 온갖 유혹과 욕망에 묶인 이들에게는 자유와 해방을, 가난한 이들에게는 복된 소식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고 병자들을 낫게 해 주시는 기적을 베푸신 것도 인간 구원의 절대 조건인 참된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시기 위한 것이었고, 당신께서 바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백성들에게 과다한 세금을 거두어들이던 세관장,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 유다인들이 절대로 상종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의 여인,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들까지도 아무런 차별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비난하는 유다교 지도자들에게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가 5,31-3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추종자들과 반대자들
예수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졌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도 늘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열두 사람을 제자로 삼아 당신의 사명을 함께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가르침을 듣고 놀라운 행적을 직접 지켜 보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 곧 구세주로 인정하고 고백하였지만, 처음부터 확고한 믿음을 갖지는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문이나 한 민족을 구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그 구원은 단순한 현세적 만족이 아니라 인간을 모든 악의 뿌리인 죄에서 해방시켜 진정한 자유와 행복,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현실적 기대를 채워 주시러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유다교 지도자들의 율법 해석과 성전 운영을 정면으로 논박하셨고, 그들의 위선과 부패를 질타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다교 지도자들은 이런 예수님을 제거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이 하느님 행세를 함으로써 가장 큰 죄악인 하느님 모독죄를 저질렀다.'는 구실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하였으며, 사형의 권한을 가지고 있던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정치적 반역자로 고발하여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하였습니다. 로마 군사들은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우고, 해골산(골고타)이라는 언덕에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4.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형을 당하시자 제자들은 실망하여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예수 잔당으로 몰려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며 골방에 숨어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자신들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에 용감히 나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돌아가시고 묻히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몸을 만져 보았고, 대화도 나누었으며, 음식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것처럼 여전히 자신들을 가르치시고, 맡은 바 사명을 수행하도록 힘을 주신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증언하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주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분께서 곧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시고 권위 있는 가르침과 놀라운 행적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에게 시기를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신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으며,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세상의 악과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이고, 장차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부활하리라는 커다란 희망을 갖게 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우리의 주님으로, 그리고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을 부르는 칭호들
신약성서는 예수님을 부르는 데 다양한 칭호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그 하나하나의 칭호가 예수님 안에 계시된 신비를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 하나의 칭호로 그분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그리스도'는 히브리 말 '메시아'를 그리스 말로 번역한 것인데 '기름부음받은이'를 뜻합니다. 구약 시대에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하느님께서 지도자로 뽑으신 임금, 사제, 예언자가 취임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예언자이시고, 대사제이시며, 임금이신 예수님께서 참 구세주이심을 드러냅니다.
·주님:'주님'은 하느님의 주권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거나 그렇게 부르는 것은 그분의 신성에 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이고,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1고린 8,6).
·하느님의 어린양: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될 때 어린 양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희생된 몸으로 바쳐진 어린 양이 하느님의 옥좌에 서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어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아들: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심으로써 하느님과 당신의 관계를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으로서 하느님 아버지와 항상 함께하시며, 그분을 사랑하시고 그분께 순종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人子):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는데, 이 칭호는 특히 다니엘서(7,13-14)에서 유래한 것으로, 종말에 나타나 만민을 심판할 천상 주권자를 뜻합니다.
·사람이 되신 말씀(로고스):말씀은 세상이 생기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시며 하느님의 창조 작업에 동참하셨고, 하느님의 사랑과 영광과 생명을 나누셨습니다. 말씀은 곧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으로서,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며, 예수님께 해당되는 것은 곧 하느님께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나그네의 삶이 비록 힘겹고 고달프지만 우리의 생각과 자세를 조금만 바꾼다면 좀더 기쁘고 즐거운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인생의 길이는 우리가 정할 수 없지만 인생의 넓이와 깊이는 우리가 바꿀 수 있습니다. 얼굴의 생김새는 쉽게 바꿀 수 없지만 우리의 표정은 바꿀 수 있습니다. 하늘의 날씨는 바꿀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가짐은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변화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 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참된 스승이 필요합니다.

7.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느님 나라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느님 나라는 구약에 약속된 바와 같이 '주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러 오시어 온 세상을 정의로 다스리시고 만백성을 공평하게 다스리시는 것'(시편 97,9 참조)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착한 사람이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 생활에서부터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느님 나라가 당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가르치셨고, 사람들이 삶의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이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도록 이끄셨습니다.

8. 참 행복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10).

위에서 읽어 본 '참 행복'에 대한 예수님의 설교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려 줍니다. 지금까지 가난하고 힘없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구조적 불의와 제도적 차별 때문에 참 행복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하느님 나라의 정의가 실현되기 시작함으로써 그들도 참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을 거부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살아감으로써 손해를 보거나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역시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짐으로써 하느님의 참다운 자녀로 인정받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 나라의 실현은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되리라는 기쁜 소식, 곧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는데, 이는 그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는 하느님의 구원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악령에 사로잡혀 고생하는 사람을 해방시켜 주신 다음, “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 내고 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마태 12,28) 하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에서 죄인으로 취급하여 구원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켰던 소경이나 나병 환자, 세리와 사마리아 사람 등을 가까이 부르시고 치유하여 주시며 함께 대화를 나누시고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평화로운 모습을 실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뿐 아니라 이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과 비뚤어진 질서를 바로잡는 실천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자기의 이익을 우선으로 여기고 눈앞의 성공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좁은 문'(마태 7,13-14 참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참 행복을 깨달은 사람은 이 세상이 약속하는 모든 것을 포기할지라도 하느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 낸 사람은 '……'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9. 사랑의 새 계명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새 계명은 구약성서의 율법을 폐기하고 새로 만든 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율법은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이지만, 그것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근본 정신, 곧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마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살인의 원인인 미움과 원한까지도 품어서는 안 되며, 보복의 악순환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 정신을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마태 7,12)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마태 22,37-40)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 그 나라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심판의 잣대는 바로 '사랑의 실천'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0. 하느님 나라와 그리스도인의 소명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느님 나라는 내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실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들 가운데 가장 작은 씨앗인 겨자씨가 자라면 새들이 둥지를 틀 만큼 큰 나무가 되고, 적은 양의 누룩이 밀가루 반죽을 온통 부풀리듯이, 하느님 나라 역시 지금은 미약하게 보이지만 이윽고 세상 전체로 퍼져 나갈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마태 13,31-33 참조).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바라셨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5,13-16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악에 물들어 썩지 않도록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드러냄으로써 어둠을 밝혀 주는 빛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참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 줄 때, 세상 사람들도 하느님을 참으로 알고 하느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데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그분의 사랑과 진리,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오심으로써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실현하는 일에 협력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